얼굴보다 글을 먼저 보여 주는 소개팅을 만들기로 했다
사진을 넘기다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건 또 다른 사진이 아니었다
소개팅 앱을 켜면 사진이 먼저 나옵니다. 왼쪽, 오른쪽, 다시 왼쪽. 몇 분만 넘겨도 사람을 고른다기보다 썸네일을 고르는 기분이 듭니다. 주변에 물어보면 비슷한 말이 돌아왔습니다. 사진은 그럴듯한데 막상 대화를 시작하면 할 말이 없다고요.
그래서 순서를 뒤집어 보기로 했습니다. 얼굴보다 글을 먼저 읽게 하자. 서로의 소개글을 읽고 마음이 가면 호감을 보내고 둘 다 호감을 보냈을 때에야 사진을 보여 줍니다. 이름은 '글로 시작하는 인연'이라는 뜻에서 글연으로 정했습니다.
공개는 네 단계로 나눴다
처음 화면에는 닉네임, 지역, 직업, 그리고 한글로 쓴 소개글만 보입니다.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호감을 보냅니다. 상대도 나에게 호감을 보내면 1차 매칭이 되고 그때 서로의 사진 두 장이 열립니다. 사진까지 보고 둘 다 '대화할래요'를 누르면 마지막으로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아이디가 공개됩니다.
단계를 나눈 이유는 단순합니다. 한 번 공개한 연락처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. 그래서 되돌릴 수 없는 정보일수록 뒤로 보냈고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해야 하게 만들었습니다. 한쪽만 원해서는 아무것도 열리지 않습니다.
소개글 규칙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
소개글은 한글로 100자 이상 500자 미만입니다. 처음 구상은 "한글만"이었는데 그러면 마침표도 쉼표도 못 써서 500자짜리 글이 숨이 막힙니다. 결국 한글 음절과 띄어쓰기, 줄바꿈에 마침표·쉼표·느낌표·물음표·물결표만 허용했습니다.
더 어려운 건 연락처를 글에 숨기는 경우였습니다. 숫자를 막으면 "공일공 일이삼사"처럼 한글로 씁니다. 아이디를 막으면 "인스타 아이디는"으로 시작합니다. 그래서 한글로 쓴 숫자가 일곱 자 이상 이어지면 막고 메신저·SNS 이름 같은 말은 금지어로 걸렀습니다. 그래도 모든 우회를 막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머지는 신고로 거르기로 했습니다. 글자 검사를 계속 늘리기보다 사람의 신고를 믿는 편이 오래 갑니다.
지도에 사람이 적다는 걸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
둘러보기 화면은 시·도 지도입니다. 시·군·구마다 원을 그리고 원 크기로 그 지역에 회원이 얼마나 있는지 보여 줍니다. 여기서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. 어느 군에 회원이 한 명뿐이면 지도가 그 사람을 사실상 가리키게 됩니다.
그래서 숫자는 보여 주지 않고 '적음·보통·많음' 세 구간만 씁니다. 다섯 명이 안 되면 모두 '적음'입니다. 지역을 누르면 그 지역 사람의 글을 다섯 편씩 받아 읽고, 하루 첫 묶음을 읽은 뒤에도 새 묶음을 세 번 더 받을 수 있습니다. 무한히 넘기는 목록을 만들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. 사진을 넘기던 습관을 글에서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.
내 위치는 휴대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
지역은 회원이 직접 고릅니다. 다만 아무 지역이나 고르면 지도가 의미가 없으니, 고른 지역이 실제로 지내는 생활권인지 한 번 확인합니다. 이때 위치 좌표를 서버로 보내지 않습니다. 브라우저가 기기 안에서 고른 지역 중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서버는 '40km 안인지'라는 결과와 시각만 받습니다.
좌표를 받으면 서버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지만 지켜야 할 일도 같이 늘어납니다. 받지 않으면 유출될 일도 없습니다. 소개팅 서비스에서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.
처음부터 정해 둔 것
글연은 19세 이상만 쓸 수 있습니다. 지금은 무료 베타라 결제 기능은 꺼 두었고 본인인증은 사업자등록을 마친 뒤에 붙일 계획입니다. 그전까지는 '신원을 확인한 회원'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. 확인하지 않은 걸 확인했다고 말하는 순간 서비스 전체를 믿기 어려워지니까요.